St Valentine Baptizing St Lucilla-BASSANO, Jacopo
c. 1575. Oil on canvas. Museo Civico, Bassano del Grappa
축일:2월14일
성 발렌티노(발렌타인) 순교자
St.VALENTINE of Rome
San Valentino Vescovo e martire
Died:beaten and beheaded c.269 at Rome;
buried on the Flaminian Way; relics later translated to the Church of Saint Praxedes
Valentino=che sta bene(=that it is well),sano(=healthy),forte(=strongly),robusto(=sturdy)
성 발렌타인 데이라는 연인들의 명절은, 로마의 풍요의식을 없애기 위해,
곤봉에 맞고 목잘려 죽은 한 신부를 천주교가 수호성인으로 내세우면서 시작되었다.
기원전 4세기초부터 로마인들은 매년 루페르쿠스 신 앞에서 젊은 남자들의 통과의식을 거행했다.
그들은 상자에 담겨있는 십대 소녀들의 이름을 임의로 뽑았다.
제비뽑기에 뽑힌 소녀는 동반자가 되어 일년동안 서로 즐기고(때로 성적인 즐거움)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게 하였으며,
그 기간이 끝나면 다시 제비를 뽑았다.
그로부터 8백년이 지난 후 이 관습을 종식시키고자 마음먹은 초대 교부들은 루페르쿠스 신을 대신할 ’연인의 성자’를 찾았다.
그들은 약 200년 전에 순교당한 주교 발렌타인이 그럴듯한 후보자라고 생각했다.
서기 269년, 로마의 클로디우스 황제는 금혼령을 내렸다.
그는 남자가 결혼을 하면 집을 떠나 전쟁에 나가기를 싫어하기 때문에 형편없는 군인이 된다고 생각했다.
제국에는 군인들이 필요했고, 사람들의 평판같은 것은 아랑곳하지 않던 클로디우스 황제는
결혼제도를 폐지해 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인테람나의 주교였던 발렌타인은 젊은 연인들을 몰래 찾아오게 해서 결혼식을 올려주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황제는 진노해 연인들의 친구인 주교 발렌타인을 궁궐로 불러들였다.
그런데 황제는 젊은 주교의 위엄과 확신에 감명을 받아
로마신을 믿도록 개종시켜 처형당하는 불행으로부터 구해주려고 했다.
그러나 발렌타인은 천주교를 포기하기를 거부했다.
오히려 섣불리 왕을 개종시키려 했다.
269년 2월 14일 발렌타인은 곤봉으로 두들겨 맞고 돌팔매를 당한 후 효수되었다.
기록에 의하면 발렌타인은 옥에서 처형을 기다리고 있을 때 간수 아르테리우스의 눈먼 딸과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그녀의 시력을 기적적으로 회복시켰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그는, 그녀에게 ’당신의 발렌타인으로부터’라는 작별인사를 서명했고,
그 작별 인사는 그가 죽은 후에도 계속 남게 되었다.
St Valentine Basilica
교회의 입장에서 볼때 발렌타인은 루페르쿠스의 인기를 빼앗을 수 있는 이상적인 후보로 보였다.
그래서 496년 교황 겔라시우스는 2월 중순에 거행하는 루페르쿠스 축제를 불법이라고 선언했다.
하지만 교황은 로마인들이 운수에 자신을 맡기는 제비뽑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그것은 존속시켰다.
제비뽑기 상자에는 자원한 독신 여자들의 이름대신에 성인들의 이름이 담겨졌다.
남녀 모두 종이 쪽지를 뽑았고, 자기들이 뽑은 성인의 삶을 모방해서 다음 해를 살도록 되어 있었다.
물론 그것은 이전과는 다른 목적을 가진 다른 게임이었다.
여자를 기대했다가 성자의 이름을 뽑는 것은 많은 로마 젊은이들을 실망시켰을 것이다.
전체 행사의 영적인 주관자는 수호 성인 발렌타인이었다.
시간이 가면서 점점 더 많은 로마인들이 마지못해 기존의 축제를 버리고 교회의 명절로 그것을 대치했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성 발렌티노 사제는 같은 이름의 성인 여러 명 중에서 가장 세상에 알려진 분이시다.
발렌티노는 3세기 중엽 로마 교회에서 가장 인망이 높고 덕행으로도 출중했으므로,
그 당시 교회를 박해하고 있던 클라우디오 황제는 일찍부터 그를 주목하고 그를 불러 배교를 명했다.
그러나 본래 열렬한 신앙을 가진 발렌티노는 배교할 리 만무했다.
그는 어떠한 위협에도 교회를 버리지 않자 황제는 적당한 처치를 하기 위해 그를 로마 시장(市長)에게 보냈고,
시장은 또한 그를 법관 아스데리오에게 인도했다.
발렌티노는 아스데리오의 저택에 들어가자 찬미가를 소리 높이 부르며
"주 예수 그리스도여, 청하오니 이집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천상에서 빛을 내려 주시어 저들을 신앙으로 인도해 주소서!"라고 기도햇다.
아스데리오는 2년 전부터 소경이 된 딸이 있었다.
그랬기에 지금 성인의 기도 중에 빛이라는 말을 듣고 이를 특별한 의미로 해석해
딸의 눈을 고쳐주는 줄로 생각하고 딸을 성인 앞에 데리고 와서 시험적으로 딸의 치료를 의뢰했다.
발렌티노는 이때야말로 교회가 하느님께로부터 발생되었다는 사실을 실증하는 절호(絶好)의 기회라 생각하고
기적을 이루어 줄 것을 정성껏 하느님께 기도한 후 그 딸의 눈에 손을 대며
"영원한 빛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시력(視力)을 회복해 주시기를 빕니다."라고 기도하자 딸의 눈은 즉시 완치되었다.
이런 신기한 일을 친히 목격한 법관 아스데리오는
하느님의 능력의 위대함에 놀라 즉시 개종할 것을 결심하고 일가족 40인이 모두 성인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그들에게 견진 성사를 주기위해 교황 갈리스도가 친히 아스데리오의 저택을 방문했다고 전해진다.
황제 클라우디오는 발렌티노가 신앙을 버리지 않을 뿐 아니라 그의 힘으로
자기가 신임하고 있던 법관의 집안까지 그리스도교로 개종시켰다는 소식을 듣고 대단히 분노하여
즉시 병졸들을 파견해 그들을 체포하도록 하고 아스데리오 등은 오스티아로 끌고가서 참살(斬殺)했고
발렌티노는 가장 미운자로 취급하여 플라미니노의 회당에서 몽둥이로 때려 죽였다.
이 날이 270년 2월 14일이었다.
(대구대교구홈에서)
St. VALENTINE of Terni
발렌티노 성인은 로마의 사제로서 클라우디우스 로마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치명을 당했고 테제르의 주교이자 의사였다.
그분은 로마에서 열심히 선교하였고, 괴로워하는 사람 , 가난한 사람 , 아픈 사람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로마의 한 판사가 발렌티노 사제의 선교를 그만 두게 하였는데 눈이 부자유스러운 아가씨가 발렌티노의 전구에 의해 치유되면서
가족모두가 세례를 받게 되자 황제는 발렌티노와 그 판사를 처형하였다.
발렌티노 성인은 아이나 가축의 병을 잘 고쳐주었기 때문에 이들의 수호성인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세 때부터, 발렌티노 성인의 축일에 사랑 고백의 카드를 성인의 성상에 앞에 놓고 전구했다고 한다.
로마 순교록에 따르면 2월 14일을 발렌티노 축일로 지내는 같은 이름의 또 다른 순교자가 있다.
(성바오로딸수도회홈에서)
St. VALENTINE of Terni-Bishop, Martyr and Patron of Terni
로마의 사제이자 의사이던 성 발렌티노는 끌라우디우스 황제의 크리스챤 박해 때, 로마에서 참수치명하였고, 비아 플라미니안에 묻혔다.
로마 순교록에 따르면 같은 날(2월 14일)에 또다른 발렌티노 축일을 지낸다.
이 발렌티노는 로마에서 60마일 가량 떨어진 떼르니의 주교로서, 집정관 플라치도의 명에 따라 고문을 받다가 참수 치명하신 분이다.
많은 학자들은 이 두분의 성인은 동일 인물이며, 로마의 사제이던 발렌티노가 떼르니의 주교로서 순교했다는 것이다.
(Some scholars believe that he and Saint Valentine of Rome are the same person.)
그런데 소위 "발렌타인 데이" 즉, 2월 14일에 젊은 남여가 상대자를 고르고 애인에게 선물을 보내는 풍습은 사실 이 축일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한다.
아마도 새들이 이 시기에 짝짓기 시작한다는 이교인들의 관습과 이 축일이 혼합된 것으로 학자들은 생각한다.
(부산교구홈에서)
사랑
’발렌타인데이’로 유명한 성 발렌티노는 로마인이었고 사제였으며 신앙 때문에 순교했다는 것 외에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
따라서 독신 생활을 한 사제의 이름이 어떻게 사랑하는 이들의 내밀한 사랑 고백과 동의어가 되었는지도 알 수가 없다.
성 발렌티노가 연인들의 수호 성인이 된 까닭은 알 수 없어도, 왜 특별히 ‘사랑’이라는 덕을 담당할 성인이 있어야 하는지는 쉽게 알 수 있다.
사랑은 우리의 삶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다.
갓난아기에게 필요한 영양과 환경을 제공해도 사랑을 주지 않으면 죽게 되었음을 관찰한 연구 결과가 발표된 적이 있다.
심지어 나무나 동물들도 사랑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사랑은 모든 생명체를 생명체로 존재케 하는 생명의 본질이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인간을 ‘우주의 본질’이라고 표현했지만
사실 인간은 그 이상의 존재, ‘사랑’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더 사랑받는 존재가 된다.
우리가 사랑이라는 감정을 사용하지 않고 쌓아 두기만 한다면 결국 우리는 허무가 되고 만다.
사랑은 독점욕이나 의존성, 이기심과 같은 편협한 공간에서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랑의 본질은 주는 것이다.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한 존재로 창조되었음을 깨닫고 있는가?
나는 내가 사랑받고 있음을 안다.
(까리따스수녀회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