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典禮)에 대하여
Ⅰ. 어원 우리말의 전례(典禮)는 규정된 공식 예배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 단어는 그리스어의 Leiturgia 를 음역한 라틴어 Liturgia를 번역한 말이다. 그리스어의 어원은 정확히는 모르나 대체로 레이토스(백성의, 백성에 대한)와 에르곤(일, 작업)의 합성어로 보고 있다. 레이토스(leitos)는 백성이라는 의미를 지닌 라오스(laos)의 파생어이다. 이러한 어원의 의미를 그대로 직역하면 '백성의 일'을 뜻한다. 그런데 이 단어는 정치, 경제, 문화 등 일상생활 용어로 쓰였으며 실제의 뜻은 '백성을 위한 공공 봉사'로서 다뱡면에서 폭넓게 쓰였다. 그러다가 기원전 3-4C경 부터는 차츰 부분적으로나마 종교 분야에 봉사, 곧 예배의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다. 이처럼 Litugia(전례)라는 용어는 고대 그리스어에 그 기원을 두면서 계속 변천해 왔다. 따라서 전례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고대 그리스, 구약과 신약 성서에서, 그 후대에서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를 밝혀 보아야 할 것이다.
1. 시민사회에서 일상적인 용어로서의 전례 고대 그리스어에서 전례(Liturgia)는 원천적으로 "공적인 봉사" 혹은 "백성을 위한 봉사"를 의미한다. 특히 사회, 경제적인 상태에서 의무가 부과된 봉사로서 공익을 위한 시민의 각종 봉사 행위 자체.
가) 옛 아테네 사람들 중 부자들이 자기 재산을 들여 백성이나 시민이 해야 할 일을 대신 봉사할 때
나) 전쟁이 일어났을 때 국가를 보호하기 위해 전함을 구축하는데 자금을 부담하는 행위
다) 시민들을 위해서 음악 공연회를 개최하도록 악단의 비용을 지불하는 행위
라) 경기장을 주재하는 직책
2. 종교 - 예식적인 사용에서의 전례 헬레니즘 시대에는 신들에게 드려야 하는 봉사를 가리킴.
3. 성서 안에서의 전례
1) 구약 성서 leiturgia (전례)라는 말이 70인역(Septuaginta)에서 170번 가량 나오고 그 가운데 중요한 대목들이 경신예배에 관한 법을 설명하고 제정하는데 사용. 특히 사제나 레위들이 집전하는 성전예배의 뜻을 지니고 있다.
2) 신약 성서 구약성서처럼 일상적인 공동봉사, 예배 등 다양한데, 특히 교회예식, 공동체를 위한 봉사, 애덕행위 등 종교적인 의미가 강하다. 신약성서에서 나타나는 이 용어의 의미는 3가지 범주로 구별할 수 있다.
i) 일반적 언어에서 변형된 세속적 의미 : 로마 13,6 ; 필립비 12,25-30 ; 2고린 9,12 ; 히브 1,7.14
ii) 구약의 의식적이며 사제적인 의미 : 루가 1,23 ; 히브 8,2.6 ; 히브 9,21 ; 히브 10,11
iii) 영성적인 예식의 의미 : 로마 15,16 ; 필립비 2,17
iv) 그리스도교 예식의 의미 : 사도 13,2 4. 초세기 교부시대에서의 전례 종교적 의미가 초세기에 들어와 더욱 강해져 사도 교부들은 대부분 교회의 공식예배 특히 주교, 사제, 부제등이 집전하는 하느님께 대한 공식예배의 뜻으로 쓰고 있다. 이를테면 미사를 "신적인 전례", 세례를 "세례 전례"등으로 표현하였다. 그리고 때로는 "예식"의 뜻으로 쓰고 있다.
5. 4세기 - 6세기 동방전례에서는 초세기의 관습을 이어받아 주로 "거룩한 예배행위"의 뜻으로 사용하였으며, 미사는 모든 예배의 대표라고 하여 아예 Liturgia라고 부르기도 하였는데, 이 호칭은 현재에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서방전례에서는 이 단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으며 전례와 관계되는 사항을 라틴어로 다양하게 표현하였다. 직무관계 : Ministerium(직무수행), Munus(직분), Officium(성무,임무) 행위나 예식관계 : Opus(일,사업), Actio(행위), Ritus(의식,예식) Cerimonia(예식거행), Collecta(모임) 성사, 교회관계 : Sacrum, Sacramentum(성사), Mysterium(신비) 기타 : Cultus(예배), Servitium(봉사), Sollemnitas(장엄함) 등
6. 16세기 - 현재 16C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학문적 차원에서 고대 예절책들을 지칭하거나 넓게는 교회의 예배행위와 관련된 모든 것을 가리키기 위해 처음으로 Liturgia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 19C에 들오와서는 이 단어가 많은 책과 논문을 통해 전례적인 의미로 정착, 보편화되어 교회에서 사용하였다. 20C 초엽부터는 1917년의 교회 법전(447조와 1257 조)을 비롯하여 가톨릭 교회의 공식 문헌에서도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Ⅱ. 전례의 본질 전례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헌장'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전례는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의 수행으로 간주된다. 전례 안에서 인간의 성화는 감각할 수 있는 표징으로 드러나고, 그것은 각각 고유한 방법으로 실현되며, 또한 그리스도의 신비체 즉, 머리와 지체에 의하여 완전한 공식 흠숭이 수행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전례집전은 사제이신 그리스도와 그의 몸인 교회의 행위로서 특별히 거룩한 행위이며 그 효과에 있어서 교회의 다른 어떤 행위도 이와같은 자리 및 같은 비중을 차지할 수는 없다."(전례헌장 7항).
1.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무의 수행 이 말은 전례의 본 집전자와 그 성격을 밝힌다. 전례의 주체는 무엇보다도 신이며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분은 중재자요 대 사제로서 교회 안에서 맡겨진 사제직무를 전례를 통하여 수행하신다. 곧 그분은 참 인간으로서 인류를 대표하여 하느님께 예배와 흠숭을 드리고, 또 참 신으로서 하느님의 구원 은총을 하느님의 백성에게 전해 주신다.
2.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업적의 실현 전례의 내면적인 요소와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룩하신 구원업적이다. 다시 말해서 전례는 예수께서 지상생활, 특히 수난과 부활을 통하여 이룩하신 구원 업적을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 완전히 재현하고 실현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이루신 구원업적을 제사와 성사를 통해 수행하도록 하셨으니, 모든 전례생활은 이 제사와 성사를 중심으로 순환한다(전례헌장 6항).
3.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인간을 성화시킴 전례의 목적은 하느님께 합당한 영광을 드리고 인간 자신을 성화시키는데 있다. 따라서 하느님을 공경하는 측면에서는 인간의 행위이며, 인간을 거룩하게 하는 면에서는 하느님의 행위이다. 과거에는 전례를 하느님 공경이라는 의미를 일반적으로 강조하여 전례는 하느님만을 대상으로 드리는 예배로만 이해하곤 하였다. 그러나 참다운 의미의 전례는 하느님만을 대상으로 하는 일방 통행적인 것이 아니고 하느님과 인간 양자를 대상으로 하는 쌍방 통행적인 것이다. 곧 모든 전례 행위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거룩하게 하시는 하강적인 면과 인간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을 찬미하고 감사하며 도움을 비는 상승적인 면을 지니고 있다. 그런 뜻에서 모든 전례는 하느님과 인간이 주고 받는 대화이며 이러한 대화적인 특성은 전례의 기본 구조를 이룬다(하느님 ⇄ 인간). 어떤 전례 행위든 간에 이 2가지 방향성(하강적인 면, 상승적인 면)이 설정되어야 한다. 즉 전례 안에서 하느님께서는 공동체적인 교회 즉 당신 백성에게 은총과 생명의 진리를 하사하시고 이제 은총에 감싸인 하느님 백성인 교회 공동체는 하느님 아버지께 제사와 기도로써 감사와 찬미의 경배를 드린다.
4. 거룩한 표지를 통하여 이루어짐 전례의 내면적 요소는 그리스도의 구원업적이라고 하였지만 이러한 구원과 그에 동반하는 은총을 재현시키는 요소는 말, 동작, 사물 등 감각적인 표지들이다. 곧 전례의 표지들은 그것들이 상징하는 그리스도의 구원업적을 현실적인 사실로 실현시킨다. 그런 면에서 전례는 7성사와 직결되어 있다. 이 개념에 비추어 볼 때 성사를 집행할 때 2가지 방향선이 이루어지느냐를 보아야 한다. 즉 하느님께로부터의 성사의 은총과 인간이 하느님께 드리는 신앙고백이 있어야 한다.
5. 하느님 백성인 전체교회의 공적인 행위 모든 전례행위는 교회의 공적인 행위로서 교회의 몸 전체에 관련되고, 그 몸을 드러내며 그것에 영향을 끼친다(전례헌장 26항). 교회의 행위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직무를 대리하는 주교를 중심으로 그를 보좌하는 사제, 부제 등 성직자의 지도와 주관하에 실시한다. 모든 평신도는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하였기 때문에 전례에 참여할 권리와 의미를 지니며 그들의 사제직을 교직자들을 통하여 능동적으로 수행한다. 전례의 공적인 특성으로 인하여 가능하면 공동체를 이루어 거행함이 원칙이며 예외로 개별적으로 거행하는 경우에도 사적인 행위가 공적인 성격과 가치를 지닌다(신자없이 거행하는 미사. 또는 시간전례 등).
Ⅲ. 전례의 범위와 종류 현행 교회의 예식이나 예절 또는 기도는 크게 전례 행위와 신심 행위로 나뉘며 전례 행위에 속하는 종류는 대강 다음과 같다.
1. 전례 행위 모든 성사 : 7성사는 전례의 핵심과 골자를 이룬다. 7성사 자체가 그리스도의 구원 업적을 거룩한 표지를 통해 재현시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례를 성사라 부르기도 한다. 특히 7성사 중에서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을 기념하고 재현하는 성체성사는 모든 전례의 중심이다.
준성사 : 12C에 성사가 일곱가지로 결정되면서부터 성사 외에 교회가 정한 거룩한 표지를 통해 이뤄지는 행위를 준성사라고 불렀다. 준성사는 이름 그대로 성사는 아니지만 그 의미, 내용, 형식, 효과에 있어 성사를 모방한 거룩한 표지들이다.
시간전례 : 교회의 구성원들이 교회의 이름으로 하루의 중요한 시간에 기도함으로써 하느님을 찬미하고 인류 구원에 이바지 하며, 이를 통해 하루 전체를 성화시키는 교회의 공적기도이다.
전례주년 : 끊임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 살고 있는 교회가 1년을 주기로 하여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을 정점으로 하여 그분의 모든 구원업적과 신비 전체 및 그분의 신비에 참석한 성인들을 축하하고 기념하는 주년이다. 이 주년은 전례력을 통해 구체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2. 신심 행위 신심행위란 교회의 공식 예배나 기도인 전례행위가 아니면서 부분적으로나마 전례적 요소를 지니고 있는 일부 거룩한 행위를 말한다. 신심행위 중에는 교회 전체적인 것도 있고 지역 교회적인 것도 있지만 그 어떤 것은 교회법과 규정과 저화를 이루면 대단히 장려할 뿐 아니라 사목적인 가치도 인정한다. 그 규정이란 전례시기 및 전례행위와 조화를 이루며, 어느정도 전례에서 나오며 전례로 인도함을 말한다.
Ⅳ. 전례의 중요성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전례의 중요성을 전례헌장 안에서 강조하고 있다. "전례는 교회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며, 모든 힘이 흘러 나오는 원천이다."(10항). "모든 전례 거행은 사제이신 그리스도와 그의 몸인 교회의 행위인 까닭에 그 효과면에서 교회의 다른 어떤 행위도 같은 영예와 등급을 누릴 수 없다."(7항) 교회가 이렇게 전례에 대해 특별한 가치와 비중을 두는 것은 그리스도의 빠스카 신비를 중심으로 그분의 구원행위 전체를 거룩한 표징들을 통하여 재현하기 때문이다. 전례는 신앙의 증거와 인류에 대한 봉사와 함께 교회의 기본적이고도 본질적인 생활 양식에 속한다. 사도행전의 저자가 제시하는 초대교회의 이상적인 모습도 바로 사도들의 가르침(증거)과 친교(봉사) 및 빵의 나눔과 기도(전례)에 항구하는 것이었다(사도 2,42). 그렇다고 전례가 독립적이고 배타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전례가 교회활동의 전부는 아니라는 말이다. 사람들이 전례에 나아가려면 그들을 회개시키고 믿음을 일으키는 복음선포가 선행되어야 한다. 동시에 이미 그 단계에 도달한 신앙인일지라도 계속 회개하고 성사들을 받아야 하며, 그리스도께서 하신 대로 애덕, 신심 및 사도직의 모든 사업을 성실히 수행해야 한다. 곧 전례는 결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인간의 모든 삶과 활동과 조화를 이루면서 세상을 하느님의 나라로 이끌어야 한다. 달리 말해 전례의 목적인 하느님 공경과 인간성화는 구체적인 생활속에서 구현되어야 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전례의 개혁과 육성책을 강구하면서 교회 자체와 인류 쇄신을 지향하였듯이, 전례는 항상 세상을 성화시켜 하느님께 인도하고 그 분을 합당하게 공경하는 것과 관계되는 모든 요소를 중시하고 있다.
Ⅴ. 전례의 주체(거행자) 전례를 거행하는 주요한 주체는 사제이신 그리스도의 그 분이 직무를 부여하신 교회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전례행위 안에서는 전례에 모인 공동체가 그 직무를 대변한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는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교회전승에 의해 교계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례행위는 사적행위가 아니라 일치의 성사인 교회의 공적행위이기 때문에 개개의 지체는 등급과 직책 및 실제환경에 따라 각각 다른 모양으로 이에 관여한다. 성직자들은 서품을 통해 각각 고유한 전례직무를 부여받은 사람들로서 많은 전례행위가 이들에게 유보되어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성직자들만이 전례의 공식 집전자이거나 모든 전례의 주체는 아니다. 세례성사를 받고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한 모든 평신도들도 직접, 간접으로 전례의 주체이다. 평신도들은 성직자들과 함께 또 성직자들을 통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그 말씀에 화답하며 제물을 봉헌하고, 감사와 찬미를 드리며 세상구원을 위하여 간구한다. 평신도들 가운에 전례행위 안에서 특별한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을 전례 봉사자 또는 보조자라고 한다(복사, 성경 봉독자, 해설자, 성가대, 악기연주자, 독창자, 성체분배자, 제의실 담당자, 성당 장식자, 본당 사목회, 전례분과위원 등). 이들 봉사자들은 그들의 직무를 보다 완전하고 올바르게 수행할 수 있도록 전례 전반 및 고유 직무에 대한 사전 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외에 전례공동체를 이루는 모든 평신도들도 전례의 주체로서 모든 전례행사에 대해 능동적으로 참여하여야 한다. 구체적으로 말해 기도, 인사, 화답, 환호, 노래, 동작, 침묵 등을 적극적으로 수행하여야 한다. 교회는 능동적 참여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전례헌장에서도 16회 이상 이에 대해 언급하고 구체적인 지침을 제시하였다.
Ⅵ. 전례의 구성 요소 전례는 그리스도께서 이룩하신 구원 업적을 거룩한 표지를 통해 거행함으로써 하느님을 경배하고 인간을 거룩하게 하는 행위이다. 이를 간단한 도표로 그려보면 다음과 같다. 하느님 경배 ꠐ 전례 ꠏꠏꠏꠏꠏ 그리스도의 구원 ꠏꠏꠏꠏ 거룩한 표지 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 ꠐ 은총을 통한 인간성화 따라서 전례의 내면적 요소는 그리스도의 구원에서 나오는 효과 곧 구원 은총이며 외면적 요소는 이 은총을 드러내고 그 은총을 부여하는 감각적 표지이다. 이 감각적 표지는 자체로 은총을 내용으로 하기 때문에 거룩한 표지라고 한다. 전례를 이루는 이 거룩한 표지를 종류별로 나열하면, 전례집회, 하느님의 말씀과 인간의 화답으로 구성된 전례언어, 그리고 동작, 장소, 사물과 도구, 복장 등으로 구성된 전례의 상징적 요소들이다.
1. 전례집회
1) 전례 집회의 필요성 교회는 세례를 받은 하느님의 백성 전체를 말한다. 이러한 전체적인 개념으로서의 교회는 구체적인 집회를 통해서 드러난다. 따라서 실질적인 전례행위가 이루어지려면 교회 전체를 대변하는 지역 공동체가 있어야 하며 이런 면에서 전례 집회는 전례의 1차적이고 핵심적인 거룩한 표지이다. 흔히들 표지라고 하면 동작, 사물 등 상징적인 요소들만 생각하는데, 그 어떠한 전례이건 전례주체인 인간, 곧 전례집회가 없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물론 모든 전례가 반드시 집회 안에서 거행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그 어느 전례이건 최소한 전례집회를 기본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어느 개인이 집전하는 전례라고 할지라도 작게는 전례집회, 크게는 교회 전체를 대변한다. 다시 말하면 모든 전례는 먼저 최소한의 집회나 공동체 또는 대표자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전례집회의 중요성으로 인하여 초세기에는 전례거행을 아예 회합(Syntaxis), 회당집회(Synagoga), 공동모임(Synodus), 무리(Coetus), 모임(Collecta), 또는 교회(Ecclesia) 등 집회를 표시하는 단어를 나타내기도 하였다.
2) 집회의 구성원과 다양한 직무 교회는 교계제도를 통하여 주교, 사제, 부제 등 성직자와 평신자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각 지체는 주교를 중심으로 모여서 전례집회를 이루며, 각 지체는 그 신분과 교회가 부여한 직무에 따라 각각 다른 모양으로 전례거행에 관여한다(전례헌장 26항).
주교 : 사도직을 이어받은 사람으로서, 대사제이고 하느님의 제반 신비의 주된 분배자이며, 담당한 교회 안에서 전례생활 전체의 주관자요 추진자이며 수호자이다(교회법 835조). 지역주교의 명령이나 허락 없이는 아무도 전례행위를 주관할 수 없다. 사제 : 주교의 협조자로서 주교와 일치하며, 그리고 주교를 대리하여 그가 맡은 지역에서 전례집회를 주관한다(전례헌장 42항).
부제 : 사제가 없거나 특별한 환경에서는 부제가 일부 예식을 주례하는데, 특히 세례, 시간전례 및 장례식등이 그러하다. 평신도 : 공동 사제직을 지닌 평신자들은 전례집회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사제를 통 하여 예물을 봉헌하며, 기도하고, 노래하며 여러 성사를 받음으로써 고유한 몫을 담당한다. 그러므로 전례거행에 있어 각 구성원의 다양한 직무를 볼 때, 성직자들만 전례를 거행하며 평신자들은 단순히 수동적으로 참여만 한다는 관념은 불식되어야 한다. 교회의 각 지체는 그 위치와 직무 및 실제 참여 차이에 따라 각기 다른 방법으로 전례에 관여하는 것이다.
3) 공동적이고 능동적인 집회 교회를 이루는 각 구성원은 전례집회 안에서 각기 고유한 몫을 담당하느니만큼 각자 나름대로 능동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참으로 노래하고 기도하며 동작을 취하는 교회의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 전례행위는 본성상 공적행위이며 공동 예식으로 거행되는 것이니만큼, 될 수 있는대로 신자들이 참석하며, 집회를 이룬 가운데 거행되어야 한다. 부득이 전례 행위를 집회를 이루지 않는 상태에서 거행해야 할 때에도 그 행위가 교회의 온 몸과 관계되고 그 몸을 드러내며 영향을 끼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전례집회를 이루는 구성원은 위계와 직무의 차이는 있으나 그 외에는 모두 동등한 하느님 백성이다. 따라서 전례거행에 있어 위의 사항과 관계되는 것 외에는 신분이나 직급상의 차별을 두지 않는다(전례헌장 32항).
2. 전례언어 전례란 어떤 면에서 하느님의 말씀과 인간의 화답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대화이기 때문에 언어가 전례에서도 큰 역할을 한다. 전례상의 언어는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 봉독과 그 말씀을 풀이하는 사제나 부제의 강론이나 훈화, 이에 화답하는 교우들의 기도와 노래등이다. 이들 전례언어는 전례의 본질적 요소일뿐 아니라 전례의 기본 구조를 하느님의 말씀과 인간의 화답으로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1) 하느님 말씀 전례언어의 1차적인 요소는 하느님 말씀이며, 이 말씀은 엄밀한 의미에서 성경봉독을 통해 선포되는 말씀이며, 넓은 의미에서는 성경에 대한 해설인 사제나 부제의 강론과 훈화도 포함된다.
(1) 전례중의 성경봉독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19c 말엽부터 일어난 성서와 전례 부흥 운동에 힘입어 미사를 비롯한 모든 전례거행에 있어 성경봉독 또는 하느님의 말씀 자체를 본질적인 요소로 선포하였다(전례헌장 5-7, 24, 33, 48, 52, 59, 106, 112항 등). 그리고 이를 뒷받침 하기 위하여 "하느님의 말씀의 풍부한 식탁을 마련하도록 신자들에게 성경의 보고를 널리 개방하며, 성경의 중요한 부분을 일정한 年數내에 교우들에게 낭독해 주도록"하였다(전례51항). 나아가서 전례안에 "더 풍부하고 더 다양하고 더 적합한 성경봉독을 복구시키도록"하였다(전례 35항). 이러한 지침에 따라 개정된 미사경본과 독서책을 비롯하여 각종 전례서에 하느님의 말씀을 풍부히 제시하였다.
(2) 전례상의 성경봉독의 의미
① 전례중에 봉독되는 성경은 성령의 감도로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이다. 이 하느님의 말씀은 언제나 살아있고 힘이 있다. 게다가 저례자체는 그리스도께서 이룩하신 구원 업적을 거룩한 표지, 특히 말씀을 통해 기념하고 재현한다. 따라서 성경에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은 이 성경을 봉독할 때마다 그 분의 현존을 실현시키지만, 특히 그분의 현존 안에서 구원업적이 재현되는 전례 안에서 봉독될 때에는 특별한 모양으로 그 현존을 실현시킨다. 특히 구원의 주인공인 그리스도는 전례중에 성경이 봉독될 때에 실제로 현존하시면서 직접 말씀하신다(전례헌장 7,33항). 하느님께서는 구약에는 성도들과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고, 신약에는 사도들을 통하여 말씀하셨듯이 지금은 전례 중에 선포되는 말씀을 통해 사람들에게 말씀하신다.
② 그리스도는 전례 중에 선포되는 말씀을 통해 현존하실 뿐 아니라 현재도 작용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통해 그 말씀이 뜻하는 바를 실현시키고 인간에 대한 성부의 사랑이 실제로 그 효력을 갖게 한다(히브 4,12). 달리말해 전례상의 선포는 그 말씀의 의미와 효과를 계속적으로, 그리고 완전하게 실현시킨다. 하느님의 말씀으로서 인간이 되신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말씀으로 병자를 고쳐 주시고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시며 사람들의 마음을 뜨겁게 하셨다. 이러한 말씀의 능력은 전례 중에 봉독될 때에도 그대로 지속되게 하셨다. 그 말씀은 청중의 마음 깊은 곳까지 뚫고 들어가 병든 곳을 낫게 하시며 굳은 곳을 부드럽게 하시며 기력을 회복시켜 주신다. 한마디로 전례상의 하느님의 말씀은 과거의 사건을 재현할 뿐 아니라 오늘의 새로운 사건으로 재현한다. 교회는 이 말씀을 통해 하느님과 새 계약을 맺고 성장 발전한다.
(3)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교회의 해설(강론) 강론형식은 고대에는 봉독한 성서 본문을 차례로 해설하는 형식이었으나 점차 주제 중심의 강론이 성행하였다. 게다가 중세기에는 강론 횟수도 대폭 감소 되었을 뿐 아니라 (미사집전의 횟수가 늘어난 것이 큰 원인 중의 하나임) 그 형식이나 내용도 성서 본문 해설이나 주제별 강론을 떠나 교리해설이 성행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하느님 말씀인 성경봉독과 함께 강론도 전례의 본질적 요소로 부각시켰다(전례헌장 24, 35, 52항). 그 정신에 따라 공의회 이후의 각종 전례지침서는 전례 중의 강론을 더욱 강화하였는데 그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강론은 봉독된 성경 본문과 미사 통상문이나 고유 부분에서 취한다. = 주일과 의무 축일에는 강론이 의무적이고, 평일에도 교우들이 참석한 미사 중에는 강론을 권한다. = 강론은 사제석이나 강단에서 한다. = 강론은 서서하거나 앉아서 한다. 교회가 다시금 강론을 이토록 강조하는 이유는, 이 강론을 현대의 언어와 환경에 맞도록 해설되고 적응된 하느님의 말씀으로 보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강론은 축성된 빵을 나누는 행위와도 같다. 하느님의 몸인 성체는 나눔으로써 교우들에게 양식으로 제공하듯이,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은 강론으로써 교우들에게 영신적 양식으로 나눠주는 것이다.
2) 인간의 말 전례언어의 2차적인 요소는 하느님 말씀에 화답하는 인간의 말인데, 이 언어는 전례사에서 크게 기도와 노래의 형태로 나타난다.
(1) 전례 기도의 양식
① 주례자의 기도 주례자의 기도는 교회의 이름으로 바치는 기도이기 때문에 일정한 규정을 따르는데 그 특징적인 요소는 - 먼저 기도에 앞서 교우들에게 인사, 또는 권고를 한다. - 교회 및 백성을 위한 기도이기 때문에 대체로 복수형으로 되어 있다. - 기도의 내용은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전례시기, 축일 또는 의식의 뜻과 일치한다. - 극소 부분을 제외하고는 성부께 향한다. 일부 기도만이 그리스도께 향한다. - 공적인 성격에 따라 모든 사람이 자기의 기도로 삼을 수 있도록 명확히 큰 소리로 바치는 기도이어야 한다. 이 기도 중에는 다른 기도 노래 또는 악기 연주 등을 금한다(미사 총지침 12항). 축성기도 : 축성기도는 성사나 준성사 또는 주요 예식의 핵심을 이루는 기도로서 흔히 예식의 본질 부분에 속한다. 이 기도로서 예식이 목적으로 하는 사람이나 사물이 변화, 축성되기 때문에 축성기도라 한다.(미사 성찬기도, 혼인 축복기도, 서품식의 축성기도, 성유 축성기도, 성당 및 제대 축성기도 등) 모음기도 : 이 기도는 주례자가 교우들의 모든 개별적 기도를 모아서 바치는 기도이기 때문에 모음기도(Collecta)라는 특별한 명칭을 가지고 있다. 그 구조를 보면 먼저 기도 권고(기도합시다), 침묵이 앞선다. 기도의 본 내용에 들어가서는 하느님을 부르는데, 흔히 그분의 신분이나 본질 또는 구원업적 등을 간단히 열거하면서 부른다. 이어서 이런 하느님께 대조되는 인간의 상태를 전제로 하고서 도움을 청한다. 모음기도는 대부분 성부께 향하기 때문에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로 끝난다. 기도가 끝나면 백성들은 동의의 표시로 "아멘"으로 환호한다.
② 교우들의 기도 교우들의 기도란 주례자의 기도 외에 전례 집회에 모인 모든 교우들이 공동으로 바치는 기도를 말한다. 이 교우들의 기도는 그 종류가 많고 다양하다. 여기서는 그 중에서 모든 교우들이 함께 바치는 기도의 대표적인 양식을 열거핟겠다. 그런데 이 교우들의 기도는 그 성격상 대부분이 노래로 부를 수 있는 특징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일부만을 설명하고 나머지는 전례 노래 항목에서 이야기 하겠다. 환호 :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는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에 동의, 환영, 찬성을 표시할 때에는 긴 말 외에도흔히 한 두 마디의 짤막한 환호를 하거나 밗를 치곤 한다. 전례에서 말하는 환호도 이와 비슷하게 주례자나 전례 봉사자들의 기도나 권고 또는 동작에 공동체 전체가 동의와 찬성을 표시하는 짤막한 말씀을 뜻한다. 흔히 환호가 많이 나오는 전례요소를 보면 기쁨, 신앙, 감사를 드러내는 의식, 하느님의 말씀, 주례자나 전례 봉사자의 기도나 인사 끝이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전례 환호는 성서적인 환호도 있고 창작 환호도 있다. 성서적인 환호는 아멘, 알렐루야, 호산나 등이고, 창작 환호는 기리에 엘레이손, 천주께 감사, 천주께 영광, 그리스도께 찬미, 마땅하고 옳은 일입니다 등이다. 그리고 긴 형식의 환호는 거룩하시다. 영광송, 천주의 어린양 등이다. 이들 환호는 그 긴 형식과 그에 따르는 문학적 특징 때문에 일반적으로 환호라는 명칭을 안 붙인다. 환호는 그 성격상 교우 전체 의 반사적인 외침이기 때문에 자체로 노래를 요구하는 기도이다. 따라서 교우 전체가 노래 부르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비록 노래로 만들어진 환호라고 해도 멜로디가 지나치게 길거나 복잡하면 환호의 특성을 잃기 쉽기 때문에 작곡할 때에는 주의할 필요가 있다.
신자들의 기도 : 세례를 받은 모든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한 사람들로서, 그분의 기도에 대한 가르침과 모범을 따라 모든 산이와 죽은이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할 직무와 권리를 지니고 있다. 초세기 교회는 이러한 신자들의 기도 또는 부펴닉도를 전례에 반영하였다. 6C이후에 이 기도가 미사를 비롯한 대ㅜ분의 전례에서 사라졌을지라도 성 금요일의 전례는 장엄기도를 통해 계속 그 모습을 드러냈다. 개정된 미사전례에서는 신자들의 기도를 완전히 복구시켜 미사의 본질적인 요소로 되살렸을 뿐만 아니라 다른 전례 행위 안에서도 자주 드러나게 하였다. 그래서 현행 예식에서는 미사 밖에서 거행되는 세례식, 병자도유식, 장례예식, 시간 전례 등 여러 분야에서 이 기도가 등장한다. 신자들의 기도 내용과 방식을 보면 다음 몇가지로 표현할 수 있다. - 세상 구원에 대한 핵심을 지닌 공동체의 간청이다.
- 여러가지 기도 지향에 대해 전 공동체가 환호를 간청한다. - 공동체의 대표자가 공동체를 대표하여 간청을 제시한다.
(2) 전례성가
① 전례 성가의 의미(중요성) 인간은 사회생활이나 개인생활에서 그의 사상이나 감정을 음악으로 표현하기 마련이다. 특히 종교인들은 그들의 믿음과 종교적 확신을 기도, 동작외에 노래를 통해 더욱 강하게 드러낸다. 그런 면에서는 구약의 이스라엘 종교나 신약의 그리스도교가 더욱 두드러진다. 신.구약 성서나 교회 전례사를 볼 때 유대교나 그리스도교는 성가를 전례기도의 정상적인 표현 양식으로 간주하여 왔으며, 이점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헌장에서 다시 한번 강화되었다. : "말씀과 결부된 성가는 성대한 전례의 피요하고도 온전하게 하는 부분을 이룬다"(전례헌장 112항). 이 말은 음악이나 성가가 전례의 장식이나 부가물이 아니라 자체로 전례의 한 요소임을 뜻한다. 그렇다고 그것이 없으면 전례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보다는 전례집전을 완전하게 할 때에 꼭 필요한 요소라는 말이다. 그 이유는 전례 성가가 아래와 같은 특징 또는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 하느님의 구원업적에 대한 인간의 감사와 찬미의 표시 - 참된 기쁨의 표시 - 하느님의 말씀과 인간의 응답으로 이루어진 전례의 대화적인 특징에서 나오는 필수요소 - 공동체의 일치의 표시 - 말(기도)의 더 강하고도 감미로운 표현 - 축제 분위기를 만듬
- 천상 전례의 예표
② 전례 성가에 관한 교회 지침 - 자체로 노래를 요구하는 텍스트는 더이상 사제 혼자서나 교우들이 그냥 외우지 않고 노래를 불러, 노래 자체가 전례행위가 되게 한다. - 성가는 전례적이어야 한다. 곧 전례의 의미와 본질에 맞춰 거룩하고 고상하여야 하며, 전례시기, 축일, 의식 등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 성가는 특별한 경우 외에는 공동체 전체가 함께 부르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성가는 더이상 사제나 성가대의 독점물이 아니다. 성가대도 공동체의 일부이다. 그런 성가대는 교우들의 노래를 도와주고 인도하며, 예식을 더욱 성대하게 하기 때문에 적극 육성한다. - 성가선택의 원칙 : 보다 더 중요한 부분(사제와 교우가 함께 또는 교대로 부르는 부분), 자체로 성가를 요구하는 부분(환호, 찬미가 등). - 성가는 축일이나 예식의 성대성에 따라 등급을 둔다. - 라틴어 성가는 더이상 의무적이 아니다. 모국어 성가가 더욱 유익하다. 단 로마전례에서는 그레고리안 성가가 고유한 성가로서 첫 자리를 차지한다. - 성가의 시대성과 토착성을 살린다. 주교회의는 이런 성가를 육성하고 인준한다. - 가사는 가톨릭 교리에 부합하여야 하며, 주로 전례와 성경에서 취해야 한다(특히 시편에서).
③ 대표적 성서성가 전례성가는 크게 구분하여 성서성가와 비 성서적 성가로 나눌 수 있다. 성서성가는 다시금 시편, 성가 그밖의 혼합성가롤 세분할 수 있다. 시편 : 시편성가에 큰 영향을 미친것은 장엄예식의 도입과 수도회 전례이다. 종교 자유가 부여된 이래로 로마전례는 행렬, 동작 등 궁중예식의 영향으로 예식이 장엄해지면서 시편성가를 점점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 특히 수도원은 시편으로 구성된 시간전례를 날마다 공동으로 거행함에 따라 시편성가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그리하여 시편성가는 미사의 입당송, 봉헌송, 영성체송을 비롯하여 장례식, 성당축성식, 병자 및 임종예식 등에 큰 비중을 차지하면서 대부분의 전례에도 파급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교회가 시편을 가장 중요한 전례성가로 삼게 된 것은 교부들의 가르침에서 나타나듯이 시편에 대한 특별한 신념 때문이었다. 아우구스티노를 비롯하여 교부들은 시편을 그리스도와 ㄱ의 신비체인 교회의 소리, 성부께 바치는 주님의 기도, 하느님의 백성이 그 주님이신 그리스도께 드리는 기도로 간주하였다. 사실 신약 성서를 보더라도 그리스도는 시편을 당신의 기도로 삼으셨고, 시편 말씀을 당신 자신에 대한 예언으로 간주하였다. 그분은 또한 시편을 임종기도로 삼기까지 하였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시편에 대한 자섹 그대로 교회의 전례에 반영된 것이다. 시편을 노래로 부르는 것은 Psalmodia(시편+노래)라고 하며 그 양식은 다양하게 발전되어 왔다.
- 독서적 낭송 : 성서를 봉독하듯이 하되 단순하게 멜로디를 붙인다.
- 대송 낭송 : 교송으로 성가대 - 교우 또는 성가대 - 성가대가 시편을 번갈아가며 부르는 창법이다. 대체로 시편의 처음이나 끝에 후렴과 같은 것이 있는데, 처음에는 비성서적인 구절로 되었으나 차츰 시편 구절이나 성서구절로 바뀌었다. 오늘날의 입당송과 영성체송에는 아예 시편이 없어지고 도입 구절만 남아 있고 이를 그냥 Antiphona라고 한다.
- 응답 시편 : 독서 사이에 선창자가 시편이나 그 구절을 노래하면서 교우들은 후렴으로 응답한다. 여기서 발달한 것이 미사 때의 응답의 시편, 알렐루야와 싯귀 등의 창법이다. 성가(Cantica) : 교회 용어상 Cantica라고 하면 그 어원은 노래, 찬미가이지만 실제로는 시편을 포함하여 시편을 닮은 신,구약의 찬미가를 말한다. 그런데 시편은 항상 별도로 취급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시편을 제외한 성서 찬미가를 뜻한다. 신약성서의 대표적 성가는 마리아의 노래(루가 1,46-55 : Magnificat), 즈가리야의 노래(루가 1,68-79 :Benedictus), 시메온의 노래(루가 2,29-32 : Nuncdimittis) 등인데, 이들 성가는 성서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사도때부터 전례성가로 쓰였던 것 같다. 기타성서성가 : 시편과 서악 외에도 성서 구절이나 성서 사상을 따라 만든 성가도 많다. 가장 널리 알려진 성가는 미사때 사용되는 거룩하시다(이사 6,3을 따라 만듬)이다. 그리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상당수의 환호들도 성서에서 취한 것이다(미사의 입당송, 응답송의 후렴, 봉헌송, 영성체송, 시간전례의 시편 후렴 등도 대부분 성서에서 발췌한 것이다.)
④ 비 성서적 성가(창작성가) 시편성가등 성서 성가들이 전례성가로서의 자리를 굳히기 이전부터 교회는 처음부터 많은 창작 성가를 전례 중에 사용하였다. 그런데 창작성가는 그 내용이 부실하거나 이단의 도구로 쓰일 위험이 있어, 이단이 생길 때마다 서리를 맞는 역사를 여러번 되풀이 하였다. 16C 이후에 일어난 개신교는 말씀의 전례 중심의 예배 형식을 취함에 따라 모국어 사용과 함께 대중성가가 매우 발달하였다. 그중에서 가장 특이한 것은 민속가요등 일반노래 형식을 빌어 회중 전체가 성가대와 함께 쉽게 합창할 수 있는 코랄(Coral)의 발달이다. 가톨릭 교회에서도 비록 제동은 걸었지만 지역에 따라 많은 대중성가가 보급되었다. 비오 12세는 그 가치를 인정하여 대중성가를 장려하였으며 바티칸 공의회와 그 이후의 교회는 이를 재삼 확인하였다(전례헌장 118항). 3. 전례 동작 전례는 하느님의 구원을 실현시켜 인간을 거룩하게 하는 성화와 하느님께 대한 공경으 표현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전례동작은 전례의 이러한 성화와 공경의 목적과 기능에 맞아야 한다. 그런데 하느님의 구원엄적이 다양하듯이 이를 표현하는 전례 동작도 다양하다. 그뿐 아니라 표현방법 자체도 크게는 나라마다, 작게는 개인마다 다르다. 따라서 전례는 내용과 행위자에 따라 다양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전례는 교회의 행위이다. 그리스도 안에 한 몸을 이루는 한 하느님의 백성이 같은 믿음을 표현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전례의 특성상 그 표현은 일치성도 전제로 하고 있다. 곧 전례 동작은 일치 속에 다양성을 드러내는 것이어야 한다.
1) 서는 자세
① 존경을 표하는 자세 : 사제나 부제가 복음을 봉독할 때엔 하느님께서 직접 말씀하심을 드러내며, 이러한 하느님께 대한 존경의 표시로 서서 경청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서 있었다(출애 20,21 ; 느헤 8,5 ; 에제 2,1 ; 다니엘 10,11). 이러한 존경의 자세는 하느님을 대리하여 전례를 집전하는 사제나 부제에게도 드러난다. 그래서 예식의 처음과 끝에 주례자가 입당하고 퇴장하면 교우들은 일어선다. 하느님께 대한 존경의 자세는 누구보다도 제단 봉사자들, 특히 사제에게 필요하다. 이들은 백성을 대표하여 하느님을 섬기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는 것은 제단 봉사자들의 기본 자세이다(집회 50,13).
② 가장 보편적인 기도자세 : 성서에 보면 기도할 때에 흔히 서서한다(1사무 1,26 ; 마르 11,25 ; 루가 18,13). 까따콤바의 벽화나 고대조각 또는 초세기 저서들을 보면 당대의 신자들은 흔히 서서 기도했다. 이는 사도교회의 관습에서 생겼을 가능성이 있다.
③ 부활과 기쁨의 자세 :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에서 일어나셨다. 그리고 우리도 그분을 통하여 부활하여 일어났다. 이레네오의 증언에 의하면 섬 = 부활 기쁨의 연관성이 초세기부터 있었다. 그러한 의미 부여는 오늘날에도 그대로 이어져 부활시기와 주일에는 서서 기도하는 예가 많다(삼종기도 등).
④ 그 밖에 깨어 있음, 준비, 활동에 임하는 태세, 감사, 주님 맞이 및 종말이나 희망의 자세를 나타낸다.
2) 무릎 꿇음
① 보편적인 경배 및 기도자세 : 두 발로 서는 존재인 인간이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스스로를 낮추고 작게 만드는 겸손의 몸짓이자 상대방에게 존경을 드러내는 동작이나 자세이다. 하느님은 더없이 높으시고 거룩하시며 우주와 인간을 창조하신 분이다. 먼지에 불과한 인간이 그 분 앞에 나설 때엔 자연히 경배의 자세로 무릎을 꿇게 된다. 이러한 자세는 이스라엘의 경배 및 기도 자세였다. "어서와 허리 굽혀 경배 드리자. 우리를 지으신 야훼께 무릎을 꿇자"(시편 95,6). 예수께서도 게쎄마니에서 기도하실 때에 무릎을 꿇으셨다(마태 26,39).
② 뉘우침을 드러내는 표지의 사제 : 인간이 자신의 죄많은 처지를 생각하고 뉘우침을 드러내는 표지이다. 이런 면에서는 부활과 기쁨을 나타내는 서는 자세와는 정 반대의 의미를 지닌다.
③ 하느님의 도움을 청하는 간청의 자세 : 인간은 겸손되이 무릎을 꿇고 기도함으로써 간절한 원의를 드러낸다. 피정이나 특별 기도 행사를 시작할 때에 외는 "임하소서, 성령이여"(Veni Creator Spiritus)의 첫 구절도 그런 의미에서 무릎을 꿇고 바친다. 또한 성 금요일의 장엄 기도 때에 무릎을 꿇는 것도 같은 뜻을 지닌다. * 그런데 한 쪽 무릎을 꿇는 것은 두 무릎을 꿇는 것과는 달리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익숙한 동작이 아니다. 그래서 주교회의는 이것을 고개를 숙이는 동작으로 바꿨다. 그러나 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가 일어서거나 그러한 상태를 계속 유지하는 자세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매우 친숙한 자세이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성당 좌석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장궤틀의 무릎 받침대가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무릎 꿇고 두손 모아 기도하는 신앙인 본연의 자세를 큰 이유없이 간단히 제거해도 좋은지 모두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3) 앉음 인간은 몸의 구조상 오래 서 있거나 꿇어 있으면 쉽게 피로를 느끼는 반면 앉으면 몸도 편안해지고 마음도 차분히 가라 앉는다. 즉 올바른 자세로 앉아 있다는 것은 바른 몸가짐을 나타내는 것 뿐만 아니라 정성이 담긴 기대와 주의력으로 가득차 있음을 말해준다. 그래서 전례에서는 가르치거나 경청의 자세로 앉는 자세를 취한다.
① 가르치는 자세 : 주교나 사제는 강론이나, 훈계를 할 때에 앉는다. 주교는 서품식, 견진예식, 미사 등 각종 예식 중의 훈화 부분에 흔히 앉는다.
② 경청의 자세 : 전례 중에 복음을 제외하고 성경을 봉독할 때에나 사제나 부제의 강론때에 교우들은 앉아서 경청한다. 소년 예수께서도 성전에서 학자들 가운데 앉아 듣기도 하고 묻기도 하였다(루가 2,46). 마르타의 자매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경청하였다(루가 10,39). 그리고 성경 봉독 후나 영성체 후에도 모든 사람은 앉아서 침묵 중에 주님과 은밀한 대화를 나누고 고요한 가운데 들려오는 주님의 말씀을 기울인다.
4) 엎드림 몸 전체를 땅바갇에 맞대고 엎드리는 것은 무릎을 꿇는 것과 허리를 굽히는 것을 최대한으로 강화시킨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가장 심화된 경배, 겸손, 속죄, 간청의 자세이다. 이런 뜻으로 성서에는 엎드려 기도하는 대목이 가끔 나온다(창세 17,3 ; 신명 9,18 ; 느헤 8,6 ; 유딧 9,1 ; 마태 17,6 ; 묵시 4,10 등). 흥미로운 사실은 루가에 따르면 예수께서는 게쎄마니에서 우릎을 꿇고 기도하시지만 마태오(26,39)와 마르코(14,35)에 따르면 엎드려 기도하신다. 그러나 이러한 자세는 현대생활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동서방 전례에서 드물게 나타날 뿐이다. 곧 성 금요일의 수난예식, 서품식이나 장엄 수도 서원식 중의 모든 성인 호칭 기도 등에 나타나며, 드문 자세이지만 감명을 주는 자세로 보존되고 있다. 그러나 교우 전체가 엎드리는 예는 없다.
5) 고개를 숙이거나 허리를 굽힘 이 동작은 동서를 막론하고 인사 때에 흔히 쓰이는 존경의 표지이다. 그 의미도 무릎을 꿇는 것과 대동소이하게 심도의 강약은 굽히는 행위의 심도로 표현한다. 전례에는 한쪽 무릎을 꿇는 동작보다 먼저 들어왔으며 오늘날에도 널리 쓰이고 있다 : 예물을 받아 들이기를 청하는 사제의 기도("주 천주여 겸손되 마음과..."), 사제의 영성체 준비기도, 개회식과 폐회식 때의 제대에 대한 인사 등이다. 유의할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한쪽 무릎을 꿇거나 입맞추는 풍습이 없기 때문에 이들 동작을 모두 고개를 숙이거나 허리를 굽히는 동작, 곧 작은 절이나 큰 절로 통일시켰다. 즉 제대 친구, 복음서 친구, 성체 성혈 거양후의 장궤, 자세의 영성체전 장궤, 주교에게의 친구나 장궤 등이 모두 큰 절이나 작은 절로 바뀌었다.
6) 손을 모음, 올림, 벌림 이 세 동작은 몸 전체를 대변하는 손이나 팔의 동작이다. 손을 모음 : 경건, 겸손, 봉헌의 표시이다. 또한 다른 동작(축복, 안수 등)을 취하기 위한 준비자세이기도 하다. 손을 벌림, 올림 : 개방, 수용태세, 올리는 기도, 간청 등의 자세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주례자의 기도와 연관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보아 손을 펴드는 자세는 높이 계신 하느님을 향하여 그 분의 도움을 바라는 자세이다.
7) 안수 손은 사람이나 사물과 접촉하는 대표적인 기관이다. 그래서 안수는 가장 오래된 예배 동작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특히 그리스도교에서는 성서의 영향을 받아 안수를 하늼의 영, 힘, 또는 권한을 부여하는 표시로 축성, 축복 등의 예식에 많이 사용하고 있다. 특히 견진, 고해, 서품, 병자 도유 등 성사 예식의 핵심 동작으로 간주하고 있다.
8) 행렬 많은 사람이 줄을 지어 함께 걷는 행렬은 공동으로 의지, 소망을 표시하거나 증거하는 동작이다. 그래서 기쁨과 슬픔, 소망, 증거, 축제, 환영, 존경, 신께 나아감 등의 의미로 교회 전례 안에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다윗은 주님께 대한 환영과 존경의 표시로 계약의 궤를 운반할 때 행렬하였으며(2열왕 6 ; 시편 68) 유대인들은 초막절에 예루살렘에 한주간 동안 머물면서 축제와 신께 나아감 등의 표시로 매일 성전과 실로암 샘 등으로 행렬하였다. 현행 예식에서는 다음의 경우에 행렬을 한다. : 성체 행렬, 2월 2일의 주의 봉현 미사 전 빛의 행렬, 성지 주일의 입성 행렬, 미사 때의 입당, 복음서 봉독, 예물 봉헌, 영성체 및 퇴장 행렬, 행렬 때에는 일반적으로 동반 성가가 따른다.
9) 십자 성호 십자가는 고대 중동 지방의 사형 도구였으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희생되신 이후 그리스도교 신앙의 상징이 되었다. 교회는 이미 초세기부터 여러 형태의 십자표시를 전례나 사적인 기도 등에 애용하였다. 십자 표지에 대한 최초의 증언은 2세기 중엽의 떼르뚤리아노가 제시하는데, 입교 예식의 첫 단계인 예비자를 받아들이는 예식 때에 예비자의 이마에 십자표를 그렸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예비자 예식, 견진 예식, 복음 봉독 등ㅓ에 이마 또는 복음서에 한 번 십자 표시를 한다. 이마나 입술 및 가슴에 십자를 그리는 양식은 작은 십자 성호라고 하는데 이미 중세기 이전부터 애용되었으나 전례 안에 들어온 것은 12세기 이후이다. 현재는 복음 봉독 직전에만 사용되고 있다. 이에 대한 해설은 많은데 대체적으로는 복음의 말씀을 머리로 깨닫고 입으로 선포하며 마음으로 받아들여 실천하겠다는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사람이나 사물에 십자표를 그리는 형태는 4-5세기부터 안수의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하였으며 축복, 축성, 사죄, 구마 등 여러 의미가 있다. 현행 예식에서는 미사 때의 축성, 참회 예식의 사죄, 각종 예식 끝의 파견 축복, 사물 축성 등에 나타난다. 본 의미의 십자성호는 5세기 경부터 나타나지만 전례나 개인 등에 널리 쓰이기 시작한 것은 13세기 경부터이다. 특히 이 동작은 중세 초기에 성삼 기도문과 합쳐 지면서 더욱 일반화 되었다. 이마와 가슴 및 양 어깨에 십자성호를 긋는 뜻은 이들 기관이 인간의 몸과 마음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현재 이 십자 성호는 전례나 개인기도의 시작과 끝, 하루 일과나 각종 활동의 시작과 끝 등에 널리 쓰인다. 모든 종류의 십자 표지는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구원을 완성하신 그리스도를 상징하기 때문에, 자체로 가장 짤막하고 명료한 신앙행위가 된다.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십자 표지를 통해 인간에게 부활, 밫과 구원을 이룩하신 그리스도의 인성, 특히 그분의 수난과 부활을 믿고 고백하며 생활 속에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4. 전례복
1) 의미 전례집전에 특별한 복장을 함으로써, 개인적인 특징을 덮어두고 교회의 공식 시종자로서의 예식을 거행함을 뜻한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서 모든 구성원이 동일한 임무를 수행하지는 않는다. 이같은 직무의 다양성은 전례 중에 예복의 차이로써 외적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전례복은 각 직책의 고유성을 드러내는 표지가 되어야 한다. 또한 전례복은 거룩한 전례행위를 아름답게 꾸미는데도 이바지 한다.
2) 형태 전례복의 형태에 관해서는 각 지역의 요청과 관습에 따라 주교회의가 결정해서 성좌의 인준을 받는다. 전례복의 아름다움과 고상함은 첨가된 장식의 풍부함에 달린 것이 아니고 사용된 재료와 형태에 달려 있다. 장식은 거룩한 전례에 맞지 않는 것을 피하고 전례를 드러내는 표상이나 상징을 보여 주어야 한다.
3) 색깔 전례복의 색깔을 거행하는 신앙의 신비의 특성과 전례력에 따라 진보하는 크리스챤 생활의 뜻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목적을 가졌다.동방 예식에서는 전례복의 색깔을 별로 중요시 하지 않으나, 서방 예식에서는 12세기 경부터 축제의 내용에 맞추어 사용하였다.
# 백색 : 그리스도의 현성용과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옷을 상징하며 영광, 결백, 기쁨을 상징한다. 부활시기, 성탄시기, 수난과 관계되는 날을 제외한 주님의 축일과, 기념일, 성모축일, 천사와 순교자가 아닌 성인 성녀 축일과 기념일, 모든 성인(1월 1일)과 세자 요한 축일(6월 24일), 사도요한 축일(12월 27일), 베드로의 사도좌(2월 22일) 및 사도 바오로의 개종(1월 25일)축일, 죽은 이를 위한 미사 # 홍색 : 사랑과 피를 상징한다. 주의 수난 성지주일과 성 금요일, 성신강림 주일, 주의 수난 예식, 사도와 복음사가의 축일 및 순교성인 축이로가 기념일
# 녹색 : 생명의 희열과 희망을 상징한다. 연중시기
# 자색 : 통회, 보속을 상징한다. 대림시기와 사순시기, 죽은이를 위한 미사
# 흑색, 삼베색 : 죽음을 상징한다. 죽은이르 위한 미사나 장례 예식
# 장미색 : 기쁨을 향한 휴식을 상징한다. 대림 제3주일, 사순 제4주일
# 금색 : 미사를 성대하게 거행할 때 입으며 백색, 홍색, 녹색을 입을 때 사용할 수 있다.
* 이상과 같은 색깔의 제의를 축일에 따라 갖추지 못했을 경우에는 백색으로 대신할 수 있다.
따라서 전례시에 제의색만 보아도, 그 날 축일의 성격을 알 수 있다.
Ⅶ. 전례주년과 전례력
1. 전례주년 개요
1) 개념과 의미 우리 인간 사회는 살아가는데 있어 해와 달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고 있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해와 달이 돌아가는 규칙에 따라 일정한 주기를 정하여 살아왔는데 이러한 주기가 발달하여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일반주년인 年, 月, 日, 時를 이루게 되었다. 각 나라, 지역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이러한 주기 속에 일정한 사건이나 어떤 의미를 기념하는 특정한 날이나 시기가 만들어져 매년 그것을 기념하는 예식이 거행되어 왔다. 하느님의 창조에서 출발하여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로 완성된 구원역사를 믿고 가르치는 교회도 마찬가지로 이 세상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사회의 일반주기 제도를 따르고는 있지만 이러한 일반주기 속에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된 하느님의 구원역사를 부여하면서 교회 나름대로 여러 항목과 테마별로 일정한 기간에 분배하여 별도의 고유한 주기를 정하여 지내게 되었다. 이러한 교회 고유의 주기 제도를 1년 단위로 표시한 것을 전례주년(Annus Litusgicus)이라고 하여 1년의 과정 속에서 그리스도 안에 실현된 하느님의 위대한 구원행동들을 기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전례주년을 시기, 달, 날짜 순으로 종합하여 적어 놓은 것을 전례력(Callendarium Liturgicum)이라고 한다. 교회의 한 문헌은 그러한 의미를 다음과 같은 말로 표현하고 있다. "교회는 1년의 과정 속에서 그리스도의 모든 신비, 즉 강생에서 시작해서 성신강림날과 주님의 재림에 대한 기다림을 기념한다."(전례헌장 102 ; 전례력 지침 17). 전례주년을 이루는 토대는 하느님께서 인류 역사 안에서 단계적으로 실현하신 구원업적이다. 그런데 하느님의 구원은 세상 끝날 때까지 계속되기 때문에, 전례주년은 과거의 구원역사 뿐 아니라 미래에 완성될 구원을 준비시키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한마디로 전례주년의 목적은 하느님의 구원역사를 재현하며 현재에 살고, 미래를 준비시키는 것이라 하겠다. 2) 전례주년의 구조 한 해의 양 대 축을 이루는 것은 빠스카 추일과 성탄 축일이며 이 두 축일을 중심으로 전례주년이 형성되었다. 그러므로 전례주년의 구조는 크게 부활시기, 성탄시기, 연중시기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안에 큰 집단을 이루는 요소인 성인들의 축일이 있다(성인력이라고 한다). 전례주년은 이처럼 전례 고유시기에 거행되어 나가는 축일(Temporale)과 성인들의 축일(Sanctorale)인 2가지로 나누어져 있다. 그러나 현행 전례력은 주님의 축일을 중심으로 되어 있으므로 주님의 축일과 겹치는 경우(사순, 부활, 대림, 성탄시기, 주일 등과 겹칠때) 그 날은 성인 축일을 지내지 않는다.
2. 전례력
1) 개념 교회는 1년의 모든 날을 전례일로 간주하기에 특히 미사와 시간전례로서 그 날을 거룩하게 지낸다(이 두가지로 그리스도의 신비를 날마다 기념하고 있다). 전례일은 자정에서 다음날 자정까지 계속되며 주일과 대축일에는 이미 전날 제1저녁기도부터 시작된다(이것은 해진 뒤부터 새날이 시작되는 유대인들의 날자 개념을 이어 받았다).
2) 축일의 등급과 종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까지만 하더라도 축일의 등급이 6등급 이상이었으나 지금은 등급 분류를 단순화 시켜 단지 대축일, 축일, 기념(의무, 자유)으로만 분류하였다.
(1) 대축일(Sollemnitas) : 장엄일 가장 중요한 날들로서 중심이 되는 축일이다. 과거 교회의 1급 축일에 해당되며 성격상 다음과 같이 나누어진다.
ㄱ) 주님의 대축일(구원 신비를 중심으로) : 주의 수난과 빠스카 성삼일, 예수성탄, 주의 공현, 예수승천, 성신강림, 대림.사순.부활시기의 주일, 재의 수요일, 성주간 월-목요일, 부활 팔부내.
ㄴ) 성모, 성인들의 대축일 : 천주의 모친 성마리아 대축일, 성모승천,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대축일, 모든 성인 대축일, 성 바오로, 성 베드로, 요한 세자 대축일 등
ㄷ) 지역 대축일 : 성 안드레아 김대건 순교자 대축일 등
ㄹ) 수도회의 대축일 * 위령의 날도 대축일로 지낸다. - 축제는 전날 저녁 제1저녁기도부터 지내며 어떤 대축일에는 전야 미사가 있다(성탄, 부활, 성모승천, 성 베드로, 바오로 등) - 모든 대축일은 사순과 대림시기 주일을 제외한 대축일에는 대 영광송과 신앙고백을 한다.
(2) 축일 (Festum) 성격상 다음과 같이 나누어진다.
ㄱ) 주님의 축일 : 연중이 축일, 성탄시기의 주일, 사순시기의 평일, 12월 17-24일의 대림시기 평일, 성탄 팔부내
ㄴ) 성모, 성인들의 축일
ㄷ) 지역 축일
ㄹ) 수도회 고유 축일 - 본당 수호 축일이면 교구 주교의 허락을 얻고 대축일로 지낼수 있다. - 미사 때에 대 영광송을 부른다.
(3) 기념(Memoria) - 주로 성인들을 기념하는 것으로 탄생일, 순교일로 이루어져 있다. 기념은 2가지로 구분된다.
ㄱ) 의무 기념일 : 그날 미사와 시간전례를 의무적으로 바치는 기념일
ㄴ) 자유 기념일 : 의무가 없다(선택할 수 있다). - 사순시기에는 평일도 축일급이기에 의무기념일도 자유 기념일처럼 지낸다. 그리고 같은 날 여러 자유 기념일이 겹칠때는 그 중 한가지만 지내고 다른 것은 뺄수 있다. - 연중 토요일에 의무적 기념이 들지 않으면 성모 신심 미사를 자유 기념일처럼 지낼수 있다.